스스로 내딛는 한 걸음의 의미

앞을 잘 볼 수 없는 시각장애 아이들은 어떻게 다닐까요?

자라나는 시기의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상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성장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놀이터에서나 학원가에서도 혼자 다니는 시각장애 아동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이 조사해 보니 시각장애 아이들은 스스로 이동하는 경우(4.5%)가 거의 드물고, 대부분 부모님이나 활동 보조인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동(74.4%)하고 있었어요.

왜 그럴까요?

세상파일팀은 이 문제를 주목하고 2024년 시각장애 아동 보행 교육 프로젝를 시작했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을 위한 솔루션으로 보행 교육 프로그램을 새롭게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했는데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그 과정을 나눠보려고 해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보행

비장애 아이들은 눈으로 길과 장애물을 파악하고 내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반면 시각장애 아이들은 시각 정보를 활용하기 어렵기에 안전하게 보행하기 위해서는 ‘보행 교육’이 필요해요. ‘보행을 배운다니 그냥 걸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분들도 있을 거예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행을 익혀온 비장애인들에겐 낯선 말이죠.

보행 교육은 뭘까요?

①흰지팡이를 올바르게 잡고 사용하는 방법부터 ②청각, 후각, 촉각 등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을 활용해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현재 내가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파악하는 법 ③주변의 장애물과 지형의 변화를 흰지팡이로 인지하고 보행하는 기술 학습까지를 들 수 있어요.

특히나 아동기는 한창 신체가 성장하고 감각이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때 적절한 보행 교육을 받으면 자세와 감각을 익히는 데 효과적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보행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다는 거예요.

보행 교육을 받기 어려운 이유

왜 보행 교육을 받기 어려울까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어요.

① 교재&교구가 없다

먼저,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보행을 알려주는 교재가 없어요. 시중의 교재들은 모두 보행지도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전문가용 수험서라 어른들이 보기에도 매우 어려운 내용이에요.

“시각장애 아동 맞춤의 보행 교육 커리큘럼이나 교육 자료가 전무해요. 그래서 대부분 보행지도사 재량에 따라 개별 아동에 맞는 커리큘럼을 직접 짜서 수업해요. 물론 그에 따른 장점도 있지만 선생님의 의지나 역량에 따라 교육 편차가 커요.”
보행지도사 A씨

보행에 꼭 필요한 보조기기이자 교구인 흰지팡이도 어른용뿐인데요. 아이들의 신체에 비해 너무 무겁고 길어서 사용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들이 직접 임시방편으로 자녀의 키에 맞게 흰지팡이를 자르기도 한대요.

② 교육기관&교사가 부족하다

보행을 가르쳐 주는 곳도 찾기가 어려워요. 시각장애 전담 특수학교인 맹학교에서도 보행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는 20%에 불과해요. 일반 학교의 경우엔 상황은 더 열악하고요. 각 시도 교육청에서 시각장애 특수 기관과 복지관에 위탁해 보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수도권 지역에 몰려있고 단발적으로 진행돼요.

“복지관에서는 한정된 예산과 인력 안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많아 봐야 6회 정도 수업하는 것 같아요. 수준별로 연속성 있게 교육이 이뤄지기가 어려워요.”
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 B씨

③ 가정에서 가르치기 어렵다

마지막 선택지로 부모님이 직접 보행을 가르치는 방법이 있을 텐데요. 하지만 비장애인 부모 또한 시각 정보 없이 보행하는 건 매우 낯선 일이고 흰지팡이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해요.

“언젠가는 아이가 혼자서 보행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제가 가르쳐주고 싶어도 저도 잘 모르니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줄까 봐 걱정도 되고 엄두가 안 나요.”
시각장애 아동 부모 C씨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보행 솔루션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 개발에 나섰어요. 시각장애 아이들 누구나 가고 싶은 곳에 스스로 갈 수 있게 되는 걸 목표로, 새로운 방식의 보행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한 거죠.

크게 3가지 포인트에 집중했는데요.

① 아동 맞춤형 교재&교구

먼저, 교육 프로그램의 토대가 되는 커리큘럼(교육과정)과 교구(흰지팡이)를 아동 맞춤으로 새롭게 개발했어요.

커리큘럼의 경우, 보행지도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지도할 때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아동 보행 교육 지도안’을 개발했는데요. 기존의 자격증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이론 중심의 수험용 교재들과 다르게, 아동 눈높이에 맞는 쉬운 이론과 실습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이때, 현재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신 보행지도사 선생님들을 인터뷰하고 함께 지도안을 집필해, 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시각장애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부모님들도 만나 아이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보행하는지도 들어봤고요.

이렇게 탄생한 세상파일의 보행 지도안은 집과 학교 등 실내에서 보행하는 법부터 계단 오르내리기, 인도 걷기, 횡단보도 건너기, 골목길 다니기 등 일상 속 다양한 보행 기술을 쉬운 그림 자료와 함께 제시해요. 특히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아이가 갑자기 보행 수업 받기를 거부하거나 훈련을 겁내기도 하거든요.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상황별 에피소드와 해결 방안도 구체적으로 담았어요.

또, 아이들에게 맞는 ‘아동용 흰지팡이’를 새롭게 개발했어요. 아이들의 몸에 맞는 길이와 무게에, 귀여운 디자인까지 더해 아이들이 좀 더 애착을 갖고 편히 사용할 수 있게 했어요.

② 집 주변 교육

교육의 형태에도 변화를 주었어요.

기존의 보행 교육은 복지관이나 학교 등 고정된 장소에서 이루어져, 아이들이 제한된 환경 안에서만 보행을 경험하고 연습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동의 가정 혹은 집 주변으로 보행지도사가 직접 방문해 1:1로 교육하는 형태를 기획했어요.

1:1 보행 교육은 주 1회씩, 총 12회차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아이들에게 친숙한 장소에서 교육이 이뤄지다 보니 아이들도 수업에 더 흥미와 자신감을 보이고, 수업에서 익힌 내용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도 적용하고 연습할 수 있어요.

보행 교육은 기본적인 흰지팡이 사용법과 쉬운 이론을 배우며, 마음을 열고 의지를 다지는 것부터 시작해요. 이후, 살고 있는 집 주변을 탐색하거나 자주 가는 학원, 편의점, 공원을 찾아가 보는 등 아이들의 실제 생활 반경에 맞춘 목적지 보행 훈련까지 진행돼요.

③ 부모와 함께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위한 보행 교육을 함께 진행해요.

기존의 보행 교육은 아동만을 위한 단발성 교육으로 이루어져 수업 시간 외에는 보행 연습이 지속되기 어려웠는데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부모님도 체계적인 보행 교육을 받는다면, 아이들의 보행 훈련이 지속되도록 가정에서 직접 자녀를 지도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고요.

부모 보행 교육은 총 6회차에 걸쳐 이뤄져요. 먼저, 단체 교육을 통해 부모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실내와 실외를 다니는 체험도 하고, 아동기 보행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서로 나누며 참여 의지를 다져요. 그 후, 보행지도사와의 1:1 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보행 이론 및 흰지팡이 사용법을 배우고 일상에서 어떻게 자녀의 보행 훈련을 이끌어줘야 할지 구체적인 코칭법을 배워요.

스스로 다니며 달라진 아이들의 일상

이렇게 개발된 보행 교육 솔루션은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지난 2023년, 세상파일의 보행 교육을 수료한 시각장애 초등학생 10명과 부모님 10명의 변화를 살펴볼게요.

먼저, 아이들의 스스로 보행 능력이 향상됐어요. 참여 아동 10명 중 8명(80%)이 흰지팡이 사용법과 보행 기술을 목표한 수준(평균 75점)만큼 습득했는데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갈 수 없었던 아이도 집 근처 가까운 장소는 스스로 갈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에는 엄마 없이 밖에 나가는 게 무서웠는데, 이제 흰지팡이로 보행하는 법을 아니까 집 앞 아이스크림 가게 정도는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박○린 아동(10세)

또한, 부모님들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참여 부모님 10명 전원이 직접 자녀의 보행 훈련 지도를 할 수 있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통해 자녀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모든 보호자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보행 교육에 참여하고 싶다고 응답해 주셨어요.

“아이가 학교에서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게 되고, ‘내 자리’ 뿐이었던 독립생활 반경도 복도를 지나 교문까지로 넓어졌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서인지 학교 갈 때 표정도 더 밝아지고, 스스로 작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하며 씩씩해졌어요.”
강○동 아동(11세) 부모

세상파일 보행 교육에 참여한 시각장애 아동의 인터뷰 영상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도록

올해는 솔루션을 업그레이드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지금까지 소개한 교육이 흰지팡이 사용법과 기본적인 보행 기술을 익히는 ‘기초 교육’이었다면, 이를 응용해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따른 보행 능력을 기르는 ‘심화 교육’을 개발해 보려고요.

김주원 : 우리의 솔루션이 현장에서 ‘진짜’ 효과적인지 알기 위해,
모든 프로젝트 과정에서 시각장애 아이들을 밀착 관찰하고 있어요.

시각장애 아이들이 집과 학교, 편의점 등 익숙한 장소를 스스로 자유롭게 다니는 최종 목표를 향해 세상파일의 여정은 계속될 텐데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세상파일 홈페이지를 확인해 주세요.

Project Manager 김주원 Edit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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