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불길 속으로 뛰어들며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들. 하지만 속에 쌓이는 ‘마음의 연기’는 쉽게 걷히지 않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겪는 외상과 일상 스트레스가 뒤엉켜 PTSD나 우울감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심리상담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에요.
행복나눔재단 R&D Lab에서는 소방관 심리상담 문턱 완화 프로젝트를 통해 소방관의 심리상담 경험을 만들고 있어요. 지난 1차 프로젝트에서는 불규칙한 근무 시간과 불편한 예약 시스템이 만드는 물리적 허들에 주목해, 온라인 예약 시스템과 상담 회고 과정을 새롭게 시도해 보았죠. 그 결과, 첫 상담일을 앞당기고, 상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 이전 프로젝트 노트 보기)
하지만 여전히 심리상담까지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2차 프로젝트에서는 ‘심리적 허들’을 낮출 수 있도록 첫 단계를 돕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만족스러운 상담 경험의 ‘시작’을 준비하는 소방관 심리상담 문턱 완화 2차 프로젝트, 오늘 노트에서 소개할게요.
상담과는 너무 먼 당신
2차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상담실 문턱을 더 낮출 수 있을까?’였어요. 상담에 진입뿐만 아니라 상담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도 심리적인 부분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소방관의 ‘마음’에 주목해 보기로 했습니다. 앞선 리서치에서는 상담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허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1차 프로젝트*를 통해 불편한 예약 시스템을 개선해 물리적 허들을 낮췄어요.
*소방관 심리상담 문턱 완화 프로젝트 1차는 유승제 매니저가 맡았고, 2차부터 현재까지는 정희선 매니저가 진행하고 있어요.
2차 프로젝트에서는 심리적 허들을 완화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어요. 상담실 문턱이 낮아지면 소방관분들이 큰 부담 없이 자유롭게 상담을 드나들 수 있을 테니까요. 프로젝트를 통해 만족스러운 상담을 경험한 소방관분들이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상담을 찾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심리적 장벽을 만들까요? 인터뷰에서 만난 한 소방관은 “상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는 경험을 들려주었는데요. 데스크 리서치와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크게 3가지로 어려움을 정리했습니다.
첫째, 상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어요. 상담을 받으면 나약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둘째, 시간·비용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정신의학과 진단을 받아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등 추측과 우려가 있었어요.
“1회에 10만 원? 얼마나 오래 받아야 하나요?”
셋째, 내부 상담 제도를 잘 알지 못했어요. 찾아가는 상담실 등 소방 조직 내부의 제도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어요.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이런 어려움을 덜어내는 게 중요해 보였어요. 실제 1차 프로젝트 참여자 중에는 상담 자체에는 만족했지만 편견 때문에 내부 상담 제도를 활용하지 않거나, 외부 기관 선택이 어렵고 비싸 보여서 시도조차 안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런 부정적 인식과 부담감은 정보 부족에서 비롯되기도 해요. 그래서 상담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 건 어렵더라도, 오해나 부담감은 풀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2차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심리상담을 위한 First Step
2차 프로젝트에서는 소방관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면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상담의 First Step을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어요.

1차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간편한 온라인 예약과 회고 노트는 유지하면서 발전시키되, 단기 상담이나 비대면 상담 등 다양한 유형의 상담을 제공해 보기로 했어요. 또, 상담이 끝난 뒤에는 소방관이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상담 정보를 제공해 스스로 마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죠.
프로젝트 대상자 연령도 20~30대로 좁혀, 총 10명의 대상자를 만났어요. 연령이 낮을수록 다양한 상담 방식에 대한 수용력이 높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무엇보다 최근 근무 경력이 5년 미만인 소방공무원이 소방 전체 자살자의 53%를 차지하고 있어, 좀 더 시급하게 개입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어요.
① 다양한 회차의 상담 프로그램: 선택지를 늘리다
심리상담은 만족스럽게 경험하되, 시작할 때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적절한 회차를 탐색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존 12회에서 회차를 줄여 다양한 단기 상담을 실험했어요.

6회차 프로그램은 부담이 없으면서도 만족도가 높았고, 심리검사와 해석 상담으로 구성된 1회차 프로그램은 상담에 진입하는 데 유용했어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심리검사와 해석 상담을 포함해 5회 정도가 적절한 상담 횟수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어요. 모든 소방관에게 긴 상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장기 상담을 제공할 때 시작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커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② 대면+비대면 통합 상담: 상담 스케줄을 유연하게
전문 상담기관에서는 몰입을 유지하기 위해 한 회기에서 다음 회기까지의 간격이 최대 14일을 넘지 않도록 권고하지만, 소방관의 경우 18일로 긴 편이었어요. 갑작스러운 출동이나 불규칙한 근무 스케줄 때문에 예약을 취소하는 일이 잦았죠.
워낙 변화무쌍한 업무 환경에서 일하는 만큼 대면+비대면 통합 상담을 도입해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해 보기로 했어요. 상담 프로그램을 총 6회로 구성하고, 초반 3회까지는 대면 상담을 통해 상담사와 신뢰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했어요. 이후 내담자가 원할 때는 비대면 상담으로 전환해 상담을 이어가도록 했어요.
또, 비대면 상담이지만 상담실처럼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에서 몰입할 수 있도록 스터디 카페 이용료를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분들도 막상 경험해 본 뒤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 주었어요.
③ 무료 상담 정보: 상담은 끝나도, 돌봄은 계속되도록
상담이 종료된 후에는 소방관이 활용할 수 있는 무료 상담 정보를 취합해 제공했어요. 만족스러운 상담 경험을 한 뒤에도 정보를 몰라서, 혹은 잘못 알고 있어서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찾아가는 상담실’은 소방관이 가장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진행 방식과 혜택을 정확히 아는 소방관은 드물었어요. 상담 내용은 유출되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된다는 점, 꼭 소방서 내부 공간에서 상담을 받지 않고 외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등 정확한 내용을 담았어요.
그밖에도 비용이 부담스러워 외부 기관에서 상담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위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심리상담 제도의 지원 자격·시기·신청 절차 등을 상세히 정리해 함께 담았어요.

더하기: 더 쉬운 예약, 더 편한 회고
한편 1차 프로젝트의 성과를 좀 더 발전시킨 시도도 있었어요. 앞서 1차 프로젝트에서는 상담 예약 과정을 간소화하면 상담 시작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요. 온라인 일정 관리 서비스를 이용한 1차에서 나아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예약 방법을 더 간편하게 바꿔 보았어요. 채팅방을 통해 프로젝트 매니저가 소방관과 1:1로 대화하며 소방관과 상담센터 일정을 바로바로 조율한 결과, 빠르면 3일 내로 첫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었어요.
마음 건강 다이어리는 1차 프로젝트에서 증정한 상담 회고 패키지를 좀 더 편하게 발전시킨 형태예요. 1차에서는 첫 상담이 끝난 후 노트와 펜, 커피 쿠폰, 질문지를 드리면서, 가까운 카페에 앉아 상담 내용을 되돌아보며 상담 때 느꼈던 기분이나 자신도 모르게 했던 이야기,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 등을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이 회고 노트가 상담 몰입과 만족도 향상에 효과적이었죠.
2차 프로젝트는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만든 심리 치유 다이어리 <오늘의 마음>을 활용해, 일상에서도 자신의 마음 상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빈 노트 대신, 매일의 마음 상태를 ‘행복지수’나 간단한 메모로 기록할 수 있어 습관을 기르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했어요.
– 소방관 후기
안정적으로 상담에 참여할 수 있게
다양한 회차의 상담 프로그램・비대면 상담・상담 정보 제공을 통해 2차 프로젝트(2023.03~2023.07)를 진행하면서, 1차 프로젝트와 같이 지표 3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어요.
① 첫 상담까지 걸리는 기간이 줄어들었다
R&D Lab에서는 첫 번째 상담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마음먹었을 때 빠르게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흐지부지되기 쉬우니까요. 상담을 신청하면 그 주나 그 다음 주에 첫 상담을 받을 거라 생각해, 7일과 14일의 중간값인 10일로 기준을 잡았어요.
2차 프로젝트에서는 참여를 결정한 시점부터 첫 상담을 시작하기까지의 기간이 평균 6일로 줄었어요. PBR에서는 22일이 걸리던 것을 1차 프로젝트에서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10.4일로 단축시켰고, 2차에서는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카카오톡 채널을 활용하면서 더 빠르게 첫 상담까지 연결할 수 있었어요.
② 상담 사이의 기간이 줄어들었다
전문 상담기관에서는 상담에 잘 몰입할 수 있도록 상담 주기가 최대 14일을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1차 프로젝트에서는 코로나 19 등 물리적 영향으로 PBR(18일)에 비해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는데요.
2차 프로젝트에서는 평균 14일로 줄어들었어요. 대면+비대면 통합 상담인 경우에는 7일까지도 줄어들었고요. 일정 맞추는 데 부담을 느끼는 소방관들도 좀 더 유연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안정적인 상담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의미있는 결과였어요.
③ 상담을 끝까지 완료한 비율이 늘었다
상담 완료율도 81%에서 90%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어요. 상담이 끝난 후 설문조사를 통해, ‘과거의 나쁜 기억은 회피하기만 했는데, 이제라도 마음을 보살필 수 있어서 값진 시간이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공감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지지해 주셔서 좋았다’ 등의 만족스러운 후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갑작스럽게 근무가 바뀐 적이 있었는데, 상담을 취소하는 대신 잠깐 시간을 내어 비대면 상담을 받았어요. 초반에 상담사님을 직접 만나 터놓고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비대면으로 진행해도 효과가 떨어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 상담을 완료한 소방관
일상에서도 마음건강을 관리하자
2차 프로젝트를 통해 단기 상담과 비대면 상담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1차에서 검증한 방법을 좀 더 정교화하여 소방관에게 최적화된 상담 모델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어요. 이제 소방관의 근무 환경과 특성에 맞춘 체계적인 상담 프로그램으로 마음건강을 지킬 방법을 넓혀 가려 합니다.
부정적 인식과 불확실한 정보에 가려진 심리상담까지의 길. 이제 소방관분들이 스스로 마음을 돌보고, 꾸준히 회복력을 키워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다음 노트에서는 마음관리를 위한 단기 상담모델·PTSD 등 긴 호흡이 필요한 장기 상담모델로 운영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과정을 소개할게요.
소방관 심리상담 문턱 완화 프로젝트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언제든 찾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