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공간에 가면 편안하고 환영받는다고 느끼나요?
가까운 거리, 배리어프리 장치, 자세한 안내 표지판, 배려가 느껴지는 편의시설 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죠.
솔직히 말하면 행복나눔재단은 모두에게 아주 편한 공간은 아니에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녹사평역이나 이태원역에서도 걸어서 20분이나 걸리고, 길도 복잡하고 중간 중간 가파른 언덕도 있어요. 건물에 도착해서도 정문과 후문을 헷갈리는 경우도 많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장애인도 어려운데, 장애인은 더 어렵지 않을까?’
행복나눔재단이 평소 개방된 공간도 아니고, 필요할 때는 담당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해드리다 보니 이런 질문을 해볼 기회가 없었는데요. 이 질문이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당장 우리가 가진 환경 조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친절한 안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렇게 ‘접근성 영상’ 제작이 시작되었어요.
접근성 영상?
‘접근성 영상’은 이동약자를 포함해 모두가 안전하게 공간을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안내해주는 영상이에요. 지도나 텍스트로 안내할 수도 있지만,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해요. 요즘은 영화제나 전시 같은 행사에서도 접근성 영상을 많이 활용하고요.
저희도 접근성 영상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콘텐츠 전문기업인 ‘조금다른 주식회사(이하 조금다른)’와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조금다른’은 모두의 자유로운 문화 예술 향유를 위해 접근성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소셜벤처에요. 행복나눔재단의 <프로테제*> 사업을 통해 인연을 맺어 접근성 영상까지 함께 만들게 되었어요.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 스타트업 기업의 네트워킹 사업
행복나눔재단 커뮤니케이션 파트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게 되면서 저희도 제작 과정에 함께 했는데요. 굉장히 새롭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라 그 과정을 차례대로 나눠보려고 해요.
Step 1. 우리 안에 축적된 경험 모으기
행복나눔재단에서는 장애인 당사자 분들을 모시고 미팅이나 행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러다 보니 공간을 안내하거나, 그분들이 이용하는 모습을 관찰했던 경험이 내부에 축적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는 이 경험을 모아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행복나눔재단 구성원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면서, 구성원이 생각한 장애인 당사자가 행복나눔재단을 이용하며 느낀 불편한 점 그리고 편리한 점을 파악해봤어요. 답변은 아래와 같아요.
불편한 점
찾기 어려운 길 / 재단 주변 도로 인도 미비 / 좁은 주차장 진입로 / 정문과 헷갈리는 후문 / 무거운 정문 여닫이 문 / 무거운 화장실 문
편리한 점
장애인 주차 구역 / 장애인 화장실 / 엘리베이터 버튼의 점자 / 화장실 사인의 점자와 유도블럭 / 1층 로비 휴식 공간 / 안내견 동반
사실 엘리베이터 버튼의 점자 같은 건, 구성원들이 얘기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라요. 너무 사소하고 익숙하니까요. 구성원 설문을 돌릴 때 불편한 점, 편리한 점과 관련해 실제로 경험한 사건을 함께 물어봤는데요. 그 중 한 답변이 엘리베이터 버튼의 점자와 관련된 거였어요.
‘이제 막 점자를 배우기 시작한 시각장애 아동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직접 누르고, 본인이 배운 점자를 자랑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이 에피소드를 듣고 ‘아주 사소한 것도 누군가에겐 편하고 기쁨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있구나!’ 새삼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도출한 요소들이 그저 추측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 경험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Step 2. 솔직한 스크립트 쓰기
앞서 진행한 설문을 토대로 영상 스크립트를 작성했어요.
먼저, 불편한 점은 숨김 없이 최대한 자세히 공유했어요. 홍보 면에서는 마이너스일 수 있지만, 실제 행복나눔재단을 방문하는 분들이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어, 행복나눔재단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6호선 ‘녹사평역’과 ‘이태원역’인데요. 이태원역이 더 가깝지만 길이 좁고 경사가 가파르다보니 휠체어 사용자에게 적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태원역은 ‘추천드리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하고 안내를 과감히 생략했어요. 대신 녹사평역에서 오는 길을 상세히 보여주고 설명했죠.
그리고 행복나눔재단은 정문 입구나 (장애인) 화장실 문이 무거운 편인데요. 문이 무겁다는 설명과 함께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달라고 덧붙였어요.
편리한 점은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고 담으려고 했어요. 필요한 분들이 안심하고 충분히 이용하실 수 있도록요.
예를 들면, 장애인 주차 구역이나 장애인 화장실 뿐만 아니라 작은 사인이나 버튼에 점자가 있다는 사실도 안내했는데요. 아주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는 거지만, 점자의 존재를 알면 더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또 미팅으로 방문하는 경우, 담당 매니저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때 1층에 잠시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있다는 안내도 스크립트에 담았어요.
Step 3. 당사자와 영상 찍기
어떤 분들이 이 영상을 보게 될까? 행복나눔재단에 어떤 분들이 자주 오시지? 생각해보니 주로 휠체어 사용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분들이 모두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영상을 고려했고, 다음의 요소들을 담기로 했어요.
• 휠체어 이동 경로 영상
• 음성 나레이션
• 수어통역 화면
• 텍스트 자막
• 층별 지도
필요한 요소들 중 텍스트 자막과 그래픽은 편집 단계에서 넣기 때문에, 촬영 단계에서는 저희는 휠체어 이동 경로 영상, 수어통역 화면 촬영을 함께 했어요.
휠체어 이동 경로 영상은 실외와 실내로 나누어 촬영했어요.
먼저, 가장 가까운 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행복나눔재단까지 오는 길을 촬영했어요. 휠체어 사용자를 따라가면서 이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는데요. 그냥 길을 따라 촬영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 휠체어가 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도로의 폭이나 장애물을 더 직관적으로 알려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행복나눔재단 건물 실내도 마찬가지였어요. 외부 방문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층과 공간에서 휠체어 사용자가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했는데요. 복도 폭이나 손잡이, 버튼의 높이 등을 휠체어 사용자 입장에서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촬영해보니 수동휠체어는 쉽게 지나갔던 곳을 전동휠체어는 지나가기 어렵다든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어요.
또 하나 신기했던 건, 나레이션 녹음을 한 뒤에 수어통역 촬영을 한다는 거였어요. 보통은 영상에 맞춰 나레이션을 가장 마지막에 녹음하는데 말이죠. ‘조금다른’에 물어보니, 성우가 수어를 모르면 그 속도에 맞춰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먼저 나레이션을 녹음하고 그 속도에 맞춰 수어통역 장면을 촬영하는 거죠.
저는 수어통역 장면을 처음 촬영해봤는데요. 손 동작만 잘 보이면 될 거라는 생각과 달리 ‘표정’도 중요한 언어더라고요. 전하고자 하는 말의 강도나 심각성을 표정으로 표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표정이 잘 담길 수 있도록 조명의 개수나 각도에 더 신경썼던 게 기억이 남아요.


Step 4. ‘보기 좋게’ 편집하기
소스가 다 준비되었으니 이제 자막과 지도를 넣어 편집할 차례에요.
접근성 영상이라고 해서 꼭 정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수어통역사를 구석에 배치하지 않는다’, ‘음성으로 나오는 내용은 반드시 자막으로 달아준다’ 같은 큼직한 기준 외에 세세한 것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어요.
전체 화면에서 휠체어 이동 경로 영상을 어느 정도의 크기로 배치할지, 나레이션이 잘 들리려면 배경 음악의 볼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보기 편한 자막 크기와 강조 색상은 무엇일지… 이런 요소들을 여러 입장이 되어 고민해보고 결정해야 했어요. 처음엔 쉽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디테일을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저의 ‘보기 좋은 영상’에 대한 기준도 넓어진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예쁜 영상이 곧 보기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세련된 화면과 효과, 장면에 따라 바뀌는 다채로운 배경음악,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자막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접근성 영상에서 중요한 건, 영상미 보다는 정보 전달이잖아요. 그래서 조금 덜 예쁘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편집했어요. 말 그대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분들 모두가 ‘보기 좋은’ 영상이 되도록요.
8분짜리 짧은 영상이지만, 이 영상을 통해 행복나눔재단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탄생한 행복나눔재단의 접근성 영상을 소개합니다. 접근성 영상은 행복나눔재단 홈페이지 오시는 길 메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