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만 강의를 들어본 적 있나요?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시나요?

학원, 인터넷 강의, 스터디, 교재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텐데요. 이번 아티클은 그중 인터넷 강의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에요.

인터넷 강의는 시청각을 이용한 높은 학습 효과, 과목 및 강사 선택의 높은 자유도, 과외나 학원에 비해 저렴한 비용, 시간 및 장소의 자유로움 등 여러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도 손쉽게 접근하고 실제로 많이 활용하고 있죠.

인터넷 강의는 기본적으로 ‘소리’가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 학생들이 활용하기 좋은 학습 수단이기도 해요. 소리에 의존해 강의를 들어야 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 속 시각 정보를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해설 강의도 일부 존재하고요.

그런데 R&D Lab이 시각장애 고등학생들에게 물어봤을 때, 인터넷 강의를 제대로 활용하는 학생은 없었어요. 모두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 강의를 이용하지 않았고, 일반 인터넷 강의를 화면해설 없이 ‘흘려 듣기만’ 하는 수준이었어요. 화면 내용을 모르니 강의를 반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져서 결국엔 인터넷 강의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죠.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시각장애용 화면해설을 시각장애인이 안 쓰는 이유

왜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 학생 전용으로 만들어진 화면해설 강의를 사용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서부터 문제를 파고들어 보았어요. 인터넷 강의를 활용한다고 답한 시각장애 학생 6명을 인터뷰하고 실제로 수강하는 모습을 옆에서 관찰하며 ‘사용자 여정’을 살펴보았어요. 리서치 결과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아요.

일단, 화면해설 강의에는 중요한 시각 정보가 빠져있어요.

인터넷 강의에는 속 시각정보는 크게 [프리젠테이션], [판서], [지시 표현] 이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지시 표현]이란 ‘여기’, ‘밑줄 친 곳’과 같이 강사가 특정 부분을 가리켜 설명하기 위해 쓰는 표현을 말하는데요. 언뜻 음성 정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볼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역시 시각 정보라고 보았어요.

1.프리젠테이션 지문, 문제 등 미리 준비되어 화면에 띄워주는 텍스트나 도표
2.판서 강사가 칠판에 손으로 적는 글자, 밑줄, 별표 등 필기 요소
3.지시 표현 강사가 행동 또는 지시어를 써서 가리키는 특정 부분

화면해설 강의는 이중에서 문제 풀이에 꼭 필요한 일부 프리젠테이션이나 지시 표현만 설명해줘요. 실제로 화면해설 강의 중 하나를 골라 분석한 결과, 화면해설이 설명해주는 시각 정보는 전체의 13% 정도에 불과했어요. 특히, 판서나 지시표현을 설명하지 않고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보통 핵심을 짚어줄 때 별표나 밑줄을 치는 걸 생각하면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는 셈이죠. 시각장애 학생들은 앞뒤 맥락을 바탕으로 유추해서 듣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또한 학생들은 소리로 듣는 화면해설을 불편해 했어요.

소리로 들으면 정확한 철자나 맞춤법을 모르고, 화면해설 음성과 강사의 말소리가 겹쳐 집중을 방해하는 등 음성 정보를 캐치하기 어렵다는 얘기였어요. 또 재생시간이 길어서 화면해설 강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이 말을 듣고 화면해설 강의 2개를 임의로 골라 분석한 결과, 일반 강의에 비해 재생시간이 30% 정도 더 길었어요.

이 밖에도, 필요한 구간을 선택해서 들을 수 없고, 강의 선택 폭이 좁다는 불편함이 있었죠.

정리해보면, 인터넷 강의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활용 가능성이 높은 학습 수단이지만 시각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줄 편리한 보조도구가 없다보니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워요. 이것을 우리가 개입해서 풀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솔루션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잘 개발하면 두루 적용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솔루션이 될 것 같았죠.

시각장애 학생의 인강 수강을 도울 솔루션

음성 전달 자체가 가진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아예 다른 방식을 고민했는데요. 그래서 나온 솔루션이 텍스트 해설이었어요.

시각 정보를 소리가 아닌 텍스트로 전달하는 건데요. 텍스트라면 강의 음성과 소리가 겹치지 않으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동시에 활용할 수 있어요. 또한 철자나 맞춤법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따로 받아 적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비시각장애 학생이 해설서를 보면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참고로, 시각장애 학생들은 휴대용 점자 단말기를 활용해 점자 텍스트 자료를 읽어요)

소리 → 텍스트로 방법에 변화를 주었다면, 내용적으로는 시각 정보를 100% 제공하고자 했어요. 인터넷 강의에 포함된 [프리젠테이션], [판서], [지시 표현] 등 가능한 모든 시각 정보를 빠짐 없이 설명하는 거죠.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거예요.

*프리젠테이션 33:48
밑줄 친 countersignal이 다음 글에서 의미하는 바로 가장 적절한 것은? {6} In one study, ˇ she asked <the shop assistants ˇ worki{ng} in high-end designer stores> ˇ {to}{△} rate two shoppers, …

*지시 33:56
이 목적어한테 : <the ~ stores>

*프리젠테이션 34:20
… 〈one in gym clothes {and}{△} the other in a dress and fur.〉

*판서 34:35
운동복 vs 고급의상

*이 이미지는 특정 인터넷 강의 중 장면을 가져와 보기 쉽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기호 설명
ˇ: 강사의 필기 중 끊어 읽기 표시
{}, 〈〉 : 강사의 필기 중 강조 표시 (범위가 중첩되면 안 쪽 범위부터 순서대로 {}, 〈〉 사용)

맨 처음에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직접 텍스트 해설을 써봤는데요. 그러면서 어떤 정보를 다루어야 하는지, 어떤 기호를 쓰고 어떻게 작성해야 보기 편한지 나름의 기준을 정리하고, 시각장애 학생 당사자들과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매뉴얼과 양식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여러 제작자 분들과 함께 텍스트 해설을 만들고 있어요.

솔루션에 솔루션 더하기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솔루션을 보완하기도 하는데요. 이 프로젝트도 중간에 텍스트 해설을 더 잘 쓸 수 있게 하는 확장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발했어요.

학생들이 텍스트 해설을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던 중 엉뚱한 부분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어요. 강의 진도보다 한참 앞의 자료를 읽고 있는데도 놓쳤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죠. 그래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내용에 맞는 해설을 적절한 타이밍에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알람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어요.

알람 프로그램 캡쳐 화면 (출처 : 2023 수능특강 – 주혜연의 영어 03강 03 함축(2))

말 그대로 강의 재생 중 해설이 있는 구간에서 알람 소리가 나오는 건데요. 신속한 개발과 검증을 위해, 알람을 설정하고 울리게 하는 최소 기능만 넣기로 했어요. 2개월만에 MVP*를 개발을 마치고 테스트한 결과, 학생들은 강의 진도에 맞춰 텍스트 해설을 읽었고 알람 프로그램이 유용하다고 평가했어요. 이렇게 알람 프로그램까지 더해진 우리만의 텍스트 해설 솔루션이 갖춰졌어요.

*MVP(Minimum Viable Product) : 최소한의 기능만 구현한 제품을 의미해요.

사실 이 외에도 강의의 시각적 특징 요약, 타임스탬프, 적절한 타깃 발굴 등 더 많은 최적화 과정을 거쳤는데요. 여기서 풀기엔 너무 긴 이야기이니, 궁금한 분들은 <시각장애 학생 인터넷 강의 접근성 프로젝트> 리포트를 봐주세요.

시각장애 학생이 텍스트 해설과 알람 프로그램을 활용해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모습

꾸준히 수강하게 된 인터넷 강의

텍스트 해설 솔루션을 고등학교 1학년 시각장애 학생 두 명에게 제공해봤어요. 두 학생 모두 인터넷 강의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가족이 옆에 붙어서 시각 정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이 불편해 인터넷 강의를 점점 멀리하게 된 상황이었어요.

그랬던 두 학생은 현재 인터넷 강의를 8개월째 꾸준히 수강해오고 있어요. 아무리 좋다고 말해도 실제로 손이 안 가면 소용없잖아요. 때에 따라 수강 주기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속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있게 봤어요.

텍스트 해설 덕분에 강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공부에 대한 흥미가 향상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해설 없이 강의를 들으면 5%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 필기에 중요한 내용이나 부연 설명이 다 있다보니까 그 부분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설을 보면 요점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복습하는 느낌이 들어요.”
“읽으면서 들으니까 강의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지시대명사를 많이 쓰는 부분에서는 ‘뭔 소리야’하게 돼서 더 간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살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필기하는지 처음 안 건데, 쌤(강사) 필기 스타일을 참고해서 다른 과목에도 써먹고 있어요.”
텍스트 해설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는 시각장애 학생
이하늘 : 솔루션을 사용하는 시각장애 학생을 관찰하는 중입니다.
리서치-솔루션 개발-최적화 모든 단계에서 당사자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인데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많은 시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솔루션을 검증하고, 텍스트 해설 제작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최적화 방안도 고민해보려고 해요. 그 과정과 결과도 나중에 공유하도록 할게요.

‘시각장애 학생 인터넷 강의 접근성 프로젝트’에 대해
더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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