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PT 스튜디오가 살아남으려면

운동하고 싶어도 운동할 곳이 없는 장애인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문제에 주목한 행복나눔재단은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와 함께 ‘어댑핏 스튜디오-서울점(이하 어댑핏 스튜디오)’을 운영하면서 장애인 PT 스튜디오 모델을 개발하고 있어요. 우리 사례를 보고 더 많은 운동 센터가 장애인 고객을 받길 바라면서요.

‘우리도 한 번 해볼까?’ 생각이 들려면 운동 스튜디오가 지속 가능해야겠죠. 그래서 2022년 12월 어댑핏 스튜디오를 정식 오픈한 이후부터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찾기 시작했는데요. 오늘 얘기할 GX(Group Exercise, 그룹 운동)도 그 중 하나예요.

오픈 6개월 차, 수업이 줄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매출이 나오고 비용이 나갈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어요. 매장을 운영해 본 경험도 없을 뿐더러 참고할 사례도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오픈 전 SNS를 통해 적극 홍보하고 고객들의 반응을 열심히 관찰한 결과, 점점 관심을 갖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또 그분들이 지인에게 추천하고, 재활병원에서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어댑핏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죠.

문제는 오픈 6개월 차에 찾아왔어요. 꾸준히 늘어나던 수업이 5월 들어서 갑자기 줄어든 것이죠. 이때까지 스튜디오의 모든 수업은 1:1 PT였기 때문에, 수업은 곧 매출과 회원이 줄어든다는 말이었죠. 특히 약 2주간의 트라이얼 기간이 끝나고 정식 PT 서비스를 등록하는 ‘재등록 고객’이 두 달 사이 81%나 줄어들었어요. 아예 모르면 몰랐지, 이미 한 번 맛봤는데도 지속 이용을 안 한다는 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회원들은 왜 재등록을 하지 않는 걸까요? 공통된 피드백은 PT 가격이 비싸다는 거였어요.

사실 어댑핏 스튜디오의 PT는 회당 평균 7.5만원 정도로, 일반적인 PT 전문 스튜디오 가격(5~1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하지만 주로 병원에서 치료만 받지 PT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이 거의 없는 장애인 회원들에겐 부담이 되었던 거죠.

어떻게 하면 가격 때문에 발걸음을 돌리는 회원을 붙잡을 수 있을까?

사실 비장애인에게도 PT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렇다면 다른 운동 센터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서 고객의 발길을 끄는 걸까요?

우리가 찾아낸 답은 그룹 운동(이하 GX, Group Exercise)이었어요. 혼자 하는 PT와 달리 GX는 참여 인원에 따라 보다 낮은 가격의 선택지를 줄 수 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운동을 지속할 확률이 높으니 회원 유지에도 도움이 되죠. 때마침 주변에도 GX 전문 스튜디오가 하나둘 생기고 있었어요.

하지만 PT와 GX를 둘 다 하는 운동 센터는 드물었어요. PT와 GX는 스튜디오 운영 방식이 달라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야 했는데요. 게다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고 위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과연 이게 될까?’ 의심도 많이 들었죠.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어댑핏 스튜디오에 맞는 GX 방식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걸 찾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걸렸어요.

테스트 1. 일단 GX 수업 열어보기

*2023년 6월 ~ 8월 진행

우리는 GX 중에서도 크로스핏에 주목했어요. 크로스핏은 근력, 유연성, 협응력 등 다양한 신체 능력을 골고루 키우는 피트니스 프로그램으로 보통 그룹 수업으로 진행돼요. 사실 운동 센터에 가면 흔히들 말하는 쇠질 소리도 나고 숨소리도 나야 하는데, 어댑핏 스튜디오는 대부분의 운동이 베드에서 진행되다 보니 고요했거든요. 크로스핏으로 여기에 다이나믹(Dynamic) 한 스푼을 더해보기로 했어요.

하지만 크로스핏 동작을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에 맞게 ‘변형’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어요. 게다가 같은 뇌병변·지체 장애더라도 신체 기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변형 동작이 필요했는데요. 예를 들어, 그날의 운동을 A > B > C로 정해두었다면, 각 운동마다 ①기본 동작, ②편마비와 같이 좌우 신체능력이 비대칭인 사람, ③하지나 코어 조절이 힘든 사람, ④근력 자체가 약한 사람, 이 4가지 경우에 대한 동작을 준비해야 했죠. 그렇다고 반드시 3 X 4 = 12개의 동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고, 변형이 필요 없거나 변형 방식이 겹치는 동작도 있었어요.

또 하나 남은 문제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어요. 치료도 운동도 혼자 하는 게 익숙한 장애인 회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기획한 것이 환급 이벤트였어요. 4주 연속 출석하면 100% 환급해주는 이벤트로, PT보다 저렴한 가격*에 한 달을 더 다닐 수 있으니 회원 입장에서는 부담이 확 낮아지는 거죠.

*당시 PT 가격은 회당 평균 7~9만원. GX는 회당 3만원

3달 동안 10명의 회원이 관심 갖고 GX 수업에 참여했어요. 이 분들은 첫 달 자부담으로 시작해, 둘째 달에는 환급 받은 포인트로 이용했고, 셋째 달에는 다시 자부담으로 이용을 지속했어요.

흥미로운 점은 PT를 병행하는 회원(8명)과 그렇지 않은 회원(2명)이 섞여있다는 것인데요. PT를 하면서도 GX 수업에 꾸준히 참여한다는 것은 GX만의 재미와 매력이 있다는 의미이고, 재등록하지 않았던 회원이 참여한다는 것은 GX가 고객의 발걸음을 붙들 수 있다는 의미로 보았어요. 즉, GX 수업이 회원 유지와 지속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죠.

테스트 2. GX에 재미 더하기

*2023년 9월 ~ 11월 진행

앞서 진행한 설문을 토대로 영상 스크립트를 작성했어요.

‘테스트 1’에서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환급 이벤트를 계속하면서, 주 1회 진행하던 GX(크로스핏) 수업을 주 3~4회까지 늘려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회원들이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어댑핏 챌린지를 기획했는데요. 크로스핏 기반의 10가지 챌린지 동작을 수행하고 개인 기록을 쌓는 이벤트로, 장애인 회원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죠.

이 역시 신체 기능에 따라 개개인에게 각기 다른 동작을 적용했어요. 무게나 높이를 다르게 한 것은 물론, 사용하는 기구나 동작을 바꾸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편마비 회원은 두 손으로 드는 바벨이 아니라 한 손으로 드는 덤벨을 이용하게 했고, 뛰는 동작이 어려운 회원은 박스로 점프하는 대신 그 주변을 왔다갔다 하는 동작으로 대체했죠. 이런 경험과 노하우는 장애인 피트니스 대회 <어댑핏 게임즈(Adapfit Games)>를 기획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 결과, 3개월 동안 GX 수업 참여자는 15명 내외로 꾸준히 유지되었어요. 특히 챌린지 덕에 권태기 없이 운동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다시 한 번 GX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고민을 할 때였어요. 회원들을 좀 더 자주 GX 수업과 스튜디오에 나오게 하는 방안이 필요했어요.

테스트 3. GX 상시 개설하기

2023년 11월 ~ 2024년 3월 진행

GX 수업을 자주 이용할 수 있게끔 수업을 새로 세팅했어요. 주 3~4회 하던 GX수업을 매일 1회 이상 열리게끔 배치했고, 요일 별로 각기 다른 테마의 운동을 적용했어요.

또한 GX를 더 많이 이용하고 싶은 회원을 위한 무제한 이용권도 도입했어요. 말 그대로 한 달 동안 횟수에 관계없이 GX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데요. 주 2회 이상 나올 경우 금전적 혜택이 있게끔 24만원으로 설정했어요.

GX를 매일 1회 이상 열리게 배치하고,
요일 별로 다른 테마의 운동을 적용했다

3개월 동안 참여자는 15~20명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대부분 매일 1개 이상의 GX 수업이 운영되었어요.

하지만 무제한 이용권은 처음에 반짝했다가 점점 신청자가 줄어들었어요. 주 2회 이상 참여해야 무제한 이용권이 의미가 있는데, 장애인 PT 스튜디오를 찾아 멀리서 오는 회원 특성상 주 2회 이상 참여하기는 어려웠던 거죠.

긍정적인 발견도 있었어요. 수업을 상시로 개설하다 보니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같은 멤버로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많은 회원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함께 운동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스튜디오 회원에 대한 인사이트를 다음 테스트에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어요.

테스트 4. 크루 시스템으로 바꾸기

*2024년 4월 ~ 7월 진행

테스트4에서는 GX 방향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우선 주 2회 이상 참여가 어려운 회원 특성을 고려해, 테스트3에서 시도했던 무제한 이용권, 상시 개설, 테마는 모두 없앴고요. 대신 함께 운동하는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고민한 끝에 크루(Crew) 시스템을 도입해보기로 했어요. 아무 GX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운동할 수 있도록 팀을 결성한 것이죠.

기존에 같은 요일&시간대에 운동하시던 분들의 의향을 확인해 한 팀씩 크루로 전환했어요. 척수손상, 뇌성&소아마비, 편마비, 골형성부전증 등 장애 유형별 크루도 생기고 여러 유형이 혼합된 크루도 생겼어요. 신규 회원은 체험용 오픈 GX 수업에 참여하다가 장애 유형이나 원하는 요일을 선택해 크루에 합류할 수 있죠.

이때 결성된 크루는 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2025년 4월 기준으로 총 10개 크루*, 30명의 멤버가 활동 중이니 꽤 성공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크루 별로 이름도 짓고 사진도 찍어서 붙여 놓는 등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처음 온 사람을 위한 체험용 오픈 GX 수업도 포함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운동할 수 있도록 크루 시스템을 도입했다
크루 별로 보드를 만들어 스튜디오 복도에 붙여놨는데,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잘되는 스튜디오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1년 간의 어댑핏 스튜디오 GX 도입 과정을 나눠봤는데요. 결과만 보면 ‘테스트 1~3’은 실패한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찾아주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그룹이 형성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았던 이전의 테스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크루 시스템도 가능했던 거죠.

덕분에 스튜디오도 조금씩, 꾸준히 성장해왔어요.

먼저, PT와 GX를 포함한 수업 횟수가 늘어났어요. 스튜디오 오픈 후 다음 1분기 동안 평균 월 140회 정도였던 수업 횟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4년 4분기에는 월 400회를 달성했어요. 우리가 걱정하던 신규&재등록 비율도 80~90%를 웃돌며, 어느새 스튜디오 누적 이용 회원도 329명이 되었고요.

2024년 말을 기점으로 손익분기점도 간신히 넘겼어요. 물론, 행복나눔재단의 프로젝트 비용이나 저렴한 임대관리비 없이 생존 가능하려면 아직도 더 성장해야 하지만, 잘되는 스튜디오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Project Manager 유승제 Edit 박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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