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딥다이브’해 본 적이 있나요? 잠수부가 깊은 수심으로 내려가듯,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조사하고 분석해 본 경험 말이에요.
사회문제에 깊이 있게 접근하고 싶은 대학생이라면 Sunny Scholar가 기회일지도 몰라요. Sunny Scholar는 대학생들이 사회문제 정의부터 솔루션 도출까지, 사회문제 해결의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행복나눔재단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노트 두 편에서 Sunny Scholar의 탄생 과정을 소개했다면, 오늘은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알려드리려 해요. 4기 최종 공유회를 마무리한 어느 평일 오후, Sunny Scholar 운영국 담당 매니저들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오늘의 인터뷰이: 행복나눔재단 Sunny Scholar 운영국
Sunny Scholar의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각 단계마다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팀이에요. Sunny Scholar 4기는 네 명의 매니저가 운영했으며, 오늘 인터뷰에는 혜승·지현·효인이 함께했어요.
이 노트에서는 인터뷰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프로그램 참여자를 일컫는 Sunny를 ‘써니’로 썼습니다.
저 먼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선발에서 팀 구성까지
Sunny Scholar는 문제 당사자에게 정말 필요한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당사자와 현장을 충분히 만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비 단계부터 충분한 시간과 밀도 높은 교육을 통해 문제를 잘 분석하고 정의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죠.

선발 절차가 어렵고 까다롭기로 유명해요. 어렵고 복잡한 단계를 둔 이유가 있을까요?
혜승 사회문제에 대한 탐구심, 해결하려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 Sunny Scholar와 잘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발 과정에서 그런 면모를 최대한 발견하려고 해요.
지현 4기 선발에서는 서류 심사 외에도 PT 면접과 온라인 토론 면접을 거쳤어요. Sunny Scholar에서는 여러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특히 토론 면접에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다른 사람의 발언을 경청하는 태도 같은 걸 유심히 봤어요.
선발 과정을 통과해 써니가 되면 3박 4일간 오리엔테이션 워크숍을 거쳐 8개월 동안 함께할 팀을 만나게 돼요. 이때, 어떻게 팀을 구성하게 되나요?
지현 팀 구성은 운영국도 매번 고심하는 주제예요. 가치관 경매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방식이라 소개하고 싶은데요, ‘호기심’, ‘다양성’, ‘성취’, ‘공존’ 등 가치관을 나타내는 단어가 적힌 카드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 3개를 뽑아요. 이때, 같거나 비슷한 가치관을 뽑은 사람끼리 팀으로 묶는 거죠. 꼭 이 결과로만 팀을 만드는 건 아니고, 성격 검사 결과나 워크숍에서 보여준 모습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팀을 배정해요.

효인 사실 가치관 경매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생각을 다 파악할 수는 없어요. 막상 한 팀으로 모였더니 가치관이 너무 다른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팀 빌딩 교육을 더 신경 쓰게 됐어요. 올해는 팀 빌딩 교육을 두 차례 열어서, 강점을 기반으로 팀원들을 서로 이해하는 시간과 어떻게 건강한 회의를 할 수 있을지 배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결국 누구와 팀이 되는지보다 어떻게 팀이 되어가는지가 더 중요하군요.
지현 맞아요. 써니들도 ‘왜 이렇게 다 다른 팀원들을 묶어주셨냐, 너무 힘들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그래도 마무리할 때쯤은 ‘달라서 많이 배우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효인 저는 Sunny Scholar 3기 출신이기도 한데요, 제가 참여자일 때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한 팀으로 묶였다는 생각을 했어요. 팀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요.
지현 그래서 전공도 최대한 안 겹치게 한 팀으로 묶으려고 해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친구가 있다면, 미시적인 관점을 중요하게 보는 친구를 옆에 붙여 주는 식으로요. 그 밖에도 팀을 짤 때 고려하는 사항이 많아요.

수면 아래, 진짜 문제를 찾아서
문제 정의부터 솔루션 개발까지
이제 갖가지 문제가 넘실대는 드넓은 바다로 나갈 시간. 써니들은 사회문제 속으로 딥다이브하기 전, 해결해야 할 문제의 범위를 다듬는 과정을 거칩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 내에서 대학생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크기의 문제를 정의한 뒤, 가설을 수립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솔루션이 적합한지 판단하게 돼요.
Sunny Scholar는 3단계(사회문제 정의, 솔루션 기획, 가설 검증)로 나눠 사회문제에 접근해요. 단계마다 써니들은 어떤 활동을 하나요?
지현 가장 중요한 건 사회문제 정의예요. 보통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공모전이나 해커톤 같은 건 대부분 솔루션을 위주로 심사해요. 하지만 Sunny Scholar에서는 주어진 사회문제(장애, 다문화 등)에서 문제를 직접 찾아서 정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결과물이에요. 좋은 문제 정의에서 좋은 솔루션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에, 전체 8개월 과정에서 3개월 이상을 여기에 쏟아요.
문제를 정의하고 나면 솔루션도 써니들이 직접 만들어요. 대단한 기획이 필요한 게 아니라, 수많은 문제 중에서 딱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써니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솔루션을 기획한 뒤에는 그게 정말로 작동할 수 있는지 MVP* 형태로 현장에서 직접 검증해요.
*MVP(Minimal Viable Product): 핵심 기능만 담아 빠르게 출시해 고객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초기 버전의 제품. Sunny Scholar에서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일종의 ‘실험 도구’를 말해요.


이때, 매니저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지현 써니들의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해서 필요한 걸 제시하는 역할이에요. 정답을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주로 질문을 많이 해요. 논리적인 비약은 없는지, 솔루션 개발을 위해 현장에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데스크 리서치에만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물어봐요.

혜승 써니들이 마라톤을 뛴다고 하면 중간 지점마다 서서 물도 나눠 주고, 페이스도 체크해 주는 게 매니저들의 역할 같아요. 사실 매니저들의 관점으로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일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교육’이라는 게 답을 모두 알려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질문의 형태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아요.
대학생이 해결 가능한 크기로 문제를 정의하는 게 중요한 건 이해되지만, 굉장히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져요. ‘해결 가능한 크기’를 어떻게 판단하나요?
효인 사실 이 고민은 스콜라가 끝날 때까지도 계속하는 것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사회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어야 좋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Sunny Scholar에서 지향하는 건 대학생의 힘으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좁혀가는 거예요.
지현 예를 들어, 노인의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팀이 있으면 저희는 “그거 하려면 센터 차려야 해” 이렇게 얘기해요. 그건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대신 ‘노인분들이 집에서 병원까지 좀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 환경을 정비해 보겠다’라는 식으로 문제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초반에는 아이디어를 잘게 나누는 걸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결국에는 왜 이렇게 사고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비단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도 문제를 쪼개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고심 끝에 문제를 정의한다고 해도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애써 쌓아 올린 솔루션을 바꿔야 하는 상황도 많고요. 쉬운 결정이 아닐 텐데 매니저들은 이 과정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요?
지현 팀에서 솔루션에 확신이 있거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직접 확인해 보도록 지지하는 편이에요. 반대로, 가설을 폐기하려는 경우에는 왜 폐기하려고 하는지,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물어보죠. 팀에서 충분히 시도했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그때는 다른 솔루션으로 넘어가도록 지도해요.
써니들이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매니저들의 피드백이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저희도 피드백을 줄 때 에너지를 많이 쏟게 돼요. 지금 이런 피드백을 줘도 될까, 이런 고민을 숱하게 하죠.
효인 제가 써니일 때 운영국에서 가장 많이 해주셨던 얘기는 ‘솔루션을 바꾸더라도 그전까지 공부하고 쌓았던 현장의 지식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말이었어요. 기초를 탄탄하게 다졌다면 그걸 바탕으로 방향을 바꾸더라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위안이 됐어요.
혜승 써니들이 직접 현장에서 찾은 인사이트가 누적되고, 거기에 피드백이 쌓이면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모든 걸 엎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되면 아무래도 설득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매니저분들의 어려움은 없나요? 스물다섯 명의 써니들을 돌보려면 매니저분들에게도 쉽지 않은 여정일 것 같아요.
지현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팀에서 갈등이 있을 때예요. 매니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거든요. 매순간 어떤 상황인지 판단하고, 그에 맞는 심리적인 지원을 하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정 같아요.
혜승 저희는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한 명씩 불러서 면담을 다 하는데요. 써니들 말 들어보면 8개월 내내, 거의 모든 시간을 여기에만 쏟아붓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힘든 것도 있고,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을 때도 있겠죠. 그때마다 감정을 다독이고,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결과물을 얻도록 보살피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효인 처음에는 누군가를 교육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안 될까?’ 하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을 뿐, 모두가 각자의 속도와 방식대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성과 발표회 시간에 써니 친구들이 무대 앞에 나가서 청산유수처럼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누구나 어떤 모습으로든 성장한다는 것을 그때 느꼈어요.

바다에서 만난 것
Sunny Scholar, 이후의 이야기
솔루션 개발과 검증의 과정이 마무리되면, Sunny Scholar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인사이트를 의미 있는 결과물로 기록할 수 있도록 후속 지원 단계가 있어요. 프로젝트를 좀 더 지속해 볼 아이디어가 있다면 추가로 지원받아 직접 활동하거나, 개발한 솔루션을 현장으로 연계할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도 당사자와 만나고 있는 솔루션이 있나요?
지현 ‘프로퍼’ 팀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 친구들이 만든 진로 설계 워크북 ‘이미(immi)’는 이주배경 청소년*이 체류 자격(비자)를 이해하고, 성인이 되어도 안정적으로 체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이에요. 이 팀은 성과 공유회를 할 때부터 교육청과 협업해서 실제 교육 현장에 워크북을 배포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프로퍼 팀의 솔루션을 기반으로, 행복나눔재단에서 본격적으로 ‘이미(immi)’ 멘토링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프로퍼 팀도 체류 자격 교육을 담당해서, 중·고등학생들이 의무교육이 끝난 후에도 안정적으로 체류 경로를 계획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하고 있죠.
효인 이번 멘토링을 기획하면서 재단 매니저분이 어느 다문화 학교에 인터뷰하러 갔는데, 선생님이 프로퍼 팀의 진로 설계북을 꺼내서 보여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솔루션이 정말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부모의 노동·유학·난민 등으로 이주해, 국내에서 성장한 외국 국적의 이주배경 청소년은 부모의 체류 자격(비자)에 종속되어 체류권이 없는 불안정한 상황인 경우가 많아요.

올해 Sunny Scholar 4기도 무사히 마무리했어요. 지난 과정을 회고할 때 중요하게 평가하는 지표가 있나요?
지현 커리큘럼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이 커리큘럼이 적당한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늘 논의하는 편이에요. Sunny Scholar가 가장 중요하게 달성해야 할 지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고민하는 과정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써니 친구들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게 우리의 지향점이지 않을까 해요. ‘타인의 삶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경험이 좋았다’ 이런 이야기를 듣거든요.
혜승 지금은 자기 자신을 좀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대라 그런지, 타인을 대할 때의 감수성이 많이 등한시되는 것 같아요. Sunny Scholar 8개월만큼은 나보다 좀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인내심 있게 관찰해 봤으면, 그렇게 집중력을 발휘한 경험이 써니들의 삶에 어떻게든 남았으면 좋겠어요.
효인 저는 Sunny Scholar에서 배운 사고방식이 정말 좋았어요.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거든요. 또, 결과로 모든 성패가 갈리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찾기까지, 과정의 아름다움이 있어 좋았어요. 매니저로서 어떤 1년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고요!

이제 2026년, Sunny Scholar 5기를 맞이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다음 기수에서 반드시 더 잘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요?
효인 자기 확신을 가지고, 하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팀이 있는 반면에 여러 현장 경험과 피드백에 따라 흔들리는 팀이 있는 것 같아요. 단단함, 자기 확신 같은 걸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돼요. 지금 제 생각으로는 현장을 만나고, 타자에게 동화되어 본 경험이 그런 확신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해요.
혜승 최종 성과 공유회도 있고, 시상도 하다 보니 가끔은 경쟁에 매몰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시상은 과정일 뿐이지, 정말로 Sunny Scholar가 지향하는 마무리는 아니거든요. 문제 정의와 솔루션 개발에 쏟은 정성만큼 프로젝트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현 결국 써니들을 움직이는 힘은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인 것 같아요. 당사자를 만나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고 들으면서 ‘진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지는 걸 봐요. 이런 모습을 목격할 때,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게 재밌고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스펀지처럼 피드백을 쑥쑥 빨아들이고, 변화가 되게 빠르거든요. 저도 더 많이 공부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도 더 연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