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에서 발표되지 않는 이야기들

혹시 여러분은 SIT 컨퍼런스에 와보신 적 있으신가요?

SIT(Social Innovators Table)는 당면한 사회문제를 발굴해 재정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콘텐츠 개발 사업이에요. 연 2~3회 사회혁신가와 함께 ‘SIT 컨퍼런스’를 열어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인식을 확산해요. 주로 새롭게 이슈화되는 사회문제나 기존과 다른 접근으로 해결 가능한 영역을 다루는데요. 컨퍼런스 외에도 준비 과정에서 만난 사회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뉴스레터로 전하기도 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지점이 우리가 SIT를 콘텐츠 개발 사업이라고 부르는 이유예요.

사실 SIT 컨퍼런스는 알아도, 행사 준비 뒷이야기(behind story), 행사 이후의 이야기(after story)는 잘 모르실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아티클에서는 열여섯 번째 SIT 컨퍼런스 이야기를 빌려 그 과정을 나눠볼까 해요.

지난 2023년 5월에 열린 열여섯 번째 SIT 컨퍼런스 주제는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였어요.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과 청년을 뜻하는 ‘영케어러’ 문제에 우리 사회가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였죠. 새로운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인식을 확산한다는 SIT의 취지에 부합했던 주제라 특히 기억에 남는 컨퍼런스였어요.

Step 1. 주제 선정과 문제 접근 키워드 찾기

SIT 컨퍼런스에서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는 단계는 바로 주제 선정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사회문제 또한 새롭게 대두되거나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는데요. 마치 최신 트렌드를 접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분석하는 일은 지적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일이에요.

해당 사회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문제 접근 키워드가 무엇인지 고민해요. 여러 자료를 보고 연구자, 활동가 등 관련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제를 관통하는 주요 요인들이 눈에 띄는데요. 그중에서도 ‘실질적 논의가 가능한가’ 그리고 ‘유의미한 메시지 도출이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키워드를 선정합니다. 이 컨퍼런스를 준비할 때도 약 2개월에 걸쳐 주제를 공부하고 키워드를 찾았어요.

SIT가 영케어러 문제를 처음 접한 건 ‘아버지 간병 살인 뉴스’를 통해서였어요.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거꾸로 부모나 양육자를 돌보며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자신의 삶과 꿈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먹먹함을 느꼈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연령별 5~8%라는 추산치가 있을 뿐,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던 상황이었어요.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과 인식 확산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때만 해도 관련 자료가 많지 않다 보니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더욱 귀중했는데요. 가장 먼저, <아빠의 아빠가 됐다> 책의 저자이자 영케어러 당사자인 조기현 님을 만났어요. 조기현 님은 스무살 때부터 12년 간 줄곧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며 생계를 부담해왔다고 해요. 돌봄과 생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병행할 방법을 찾는 가운데 좌절했던 경험을 들으면서 돌봄이 오직 영케러어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돌봄’이 문제 접근의 키워드로 떠오른 순간이었죠.

돌봄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전문가도 만나보았어요. 연세대 행정학과 최영준 교수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함선유 부연구원님 등 영케어러 문제와 돌봄을 연구하시는 분들께 자문을 구했는데요.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가족 결속이 약화되는 등 인구·사회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기존에 가족에 의존하던 돌봄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이런 문제가 경제적 생산 활동과 달리 돌봄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치부되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지원 기관과 돌봄 당사자 분들도 만나보았어요. 광주 서구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등 실제로 영케어러를 발굴하고 지원해본 경험을 가진 곳들을 방문해, 영케어러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들어봤어요.

Step2. 컨퍼런스 스토리 라인 짜기

진짜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관점과 대응이 필요한지 나름대로 정리가 되면, 이제 컨퍼런스를 기획할 차례에요. 스토리 라인을 잡은 뒤 인터뷰했던 분들 중에 발표자와 대담자를 섭외하고, 몇 차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흐름을 맞추어 가요.

당시는 영케어러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의 장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컨퍼런스를 통해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부터 당사자 경험, 지원 현황, 과제, 그리고 돌봄 위기 담론까지 폭넓게 다루려고 했어요.

그래서 먼저, 두 명의 발표자를 섭외했어요. 영케어러 당사자의 돌봄 경험 이야기로 포문을 열고, 그 다음 순서에 영케어러를 발굴·지원한 했던 관계자의 이야기를 넣어 객관적인 시선을 더하려고 했죠.

컨퍼런스 말미에는 대담을 배치했는데요. 당사자와 분야별 전문가 네 명이 대화를 나누면서,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머물지 않고 영케어러 문제의 핵심에 돌봄 위기가 있다는 얘기를 끄집어내고자 했어요. 영케어러 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따라서 돌봄에 대한 생각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죠.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청중 분들의 시선이 영케어러 문제에서 돌봄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도록 흐름을 짜는 데 공을 들였어요.

리서치 자료

또 SIT 컨퍼런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문제제기 영상이에요. 문제 현황과 어려움을 요약해 담은 SIT 오리지널 영상으로, 컨퍼런스 오프닝에서 화두를 던지는 장치이기도 해요. SIT의 문제의식을 잘 전달하기 위해, 재단 내부 영상팀과 함께 직접 인터뷰하고 현장을 취재하며 제작합니다.

영상은 컨퍼런스 당일에 상영하고 나서, 인식 확산 차원에서 홈페이지나 유튜브 채널에도 공유하는데요. 문제 현황과 해결 필요성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컴팩트하게 담은 영상이라 그런지, 여러 지자체나 유관기관, 기업 CSR 담당부서로부터 활용 문의를 심심치 않게 받아요.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 – 문제제기 영상

Step3. 사회혁신가들과 나누는 문제의 본질

이런 과정을 거쳐 준비한 컨퍼런스 현장은 어땠을까요?

컨퍼런스에는 영케어러 당사자와 관계자, 그리고 영케어러와 돌봄 문제에 관심 있는 70여분이 참석해주셨어요. 신청이 일찍 마감돼 영케어러 문제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어요.

문제제기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약 2시간에 걸쳐 발표와 대담이 이루어졌는데요.

첫 번째로 발표한 조기현 작가님은 영케어러 당사자로서 N인분의 삶을 살아내며 겪었던 어려움과 자조 활동을 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어요.

다음으로는 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박재형 사무국장님은 지역에서 영케어러를 발굴하고 지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 과제와 일선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짚어 주셨어요.

이어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함선유 부연구원님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박정연 본부장님이 합류해서 대담을 이어갔는데요. 영케어러 문제의 특수성과 해결을 위한 우선순위, 공공과 민간의 역할, 돌봄 위기의 원인과 해결방안 등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어요.

이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어요.

먼저, 영케어러를 단순 ‘취약 청년’이 아닌 ‘돌봄’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노인요양서비스나 취약 청년에 대한 경제적 지원, 진로 지원 등 파편적인 지원책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영케어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결국 ‘돌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중심에 두고, 돌봄의 속성을 반영한 새로운 체계가 필요한 것이죠.

또한 영케어러 문제가 돌봄 위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논의해보았어요. 가족 내 돌봄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지자, 그 부담이 아동이나 청년까지 내려온 것이 영케어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 사회는 지금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돌봄을 제공할 사람은 줄어들고 있어요. 가족 해체나 비혼, 만혼이 증가하면서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남은 한 명이 돌봄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이른바 ‘독박 돌봄’은 영케어러 뿐 아니라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인 거에요. 따라서 영케어러 문제와 돌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돌봄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부담을 함께 지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죠.

참가하신 분들도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얻었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을 만나 에너지를 받았다는 소감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그날의 현장 분위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을 거에요. 더 자세한 내용은 SIT 홈페이지 스토리에서 볼 수 있어요.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 – 애프터무비 영상

Step4.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와 확산

컨퍼런스에서 도출된 메시지와 인사이트는 이후 프로젝트로 연결되었어요.

조기현 작가가 이끄는 ‘돌봄청년커뮤티니 N인분’과 함께 돌봄 청년·청소년 브릿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요. 가족 돌봄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멘토가 되어, 가족 돌봄 청소년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제공하고 자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에요.

2024년 1월부터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6명의 청년과 3명의 청소년이 참여하고 있어요. 청년들은 먼저, 돌봄 경험 돌아보기나 청소년 심리와 관계 맺기, 복지제도 활용, 상담 기초 등의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멘토로서 역량을 쌓았고 지금은 청소년들과 함께 1:1 멘토링, 자조 모임을 이어가고 있어요.

멘토로 참여한 한 청년이 그러더라고요. 지금까지는 돌봄 때문에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이 시간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더불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회복의 기회가 되었다는 후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프로젝트 결과를 콘텐츠로 만들어 확산할 계획도 있어요. 영케어러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시사점을, 영케어러 당사자들에게는 스스로가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주고 싶어요. 올해 상반기 중에 파일럿 프로젝트가 끝나면 성과공유회 소식을 들고 올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지금까지 열여섯 번째 SIT 스토리를 통해 SIT 컨퍼런스가 기획부터 진행, 사후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개했는데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공유하며, 실질적 해결에 한발 다가서고자 하는 SIT의 콘텐츠에 계속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려요.

2024년 상반기는 이주노동자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SIT의 고민과 소식을 가장 빠르게 받아보고 싶은 분은 ’Table Talk’ 뉴스레터 구독을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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