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사회문제를 탐구하며 사회와 자신을 이해하는 진짜 경험을 설계하는, Sunny Scholar. 점점 복잡해지는 시대에, 청년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사업을 고도화해 왔어요.
어려운 프로그램을 이탈하지 않고 참여자들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 팀 내 관계 문제 발생 시 매니저의 적극적인 개입 등 다양한 시행착오를 마주하며 프로그램은 매해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다음 단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참여자가 ‘진짜 문제’를 더 깊이 마주할 수 있도록, 현장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도인데요. 바로 2025년 5월부터 8월까지, 경상북도 의성으로 향한 Sunny Scholar in 의성의 이야기입니다.
뜨거운 여름, 의성군 곳곳을 누비며 대학생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써니에게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
Sunny Scholar도 어느덧 네 번째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동안 대학생 써니들은 실제 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를 발굴하고 정의했어요. 여기서 ‘현장’은 당사자와 이해관계자를 만나, 그들의 현실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는 곳을 말해요.

여러 분야의 사회문제를 탐구하며 다양한 현장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마음 한편에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여전히 남아 있었어요. 특히 프로젝트가 5년 차에 접어드니, 점점 비슷한 유형의 문제와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쌓이기 시작한다는 문제가 눈에 띄었죠.
지금까지 발굴한 문제들을 모아 보니 공통점이 보였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많은 당사자와 이해관계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을 비교적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특히 시니어 분야는 2기 이후 시도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어르신들은 자신의 문제를 언어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참여자들이 주어진 8개월 안에 문제 이해부터 솔루션 도출까지 마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가장 집요한 질문이 필요한 현장에는 오히려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시니어의 진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해 보기로 했어요.
서울 사는 대학생이 지역에 녹아들기까지
그렇다면 지금껏 살펴보지 못했던 문제들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탐구해야 할까요?
Sunny Scholar를 운영하면서 확인한 것 한 가지는, Sunny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런 참여자들이 현장에 직접, 장기간 거주하면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Sunny에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대학생 참여자가 지역에 직접 살아보면서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는 프로젝트를 새롭게 기획하게 되었어요.
아쉬움으로 남았던 시니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기 위해, 전국에서 어르신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경상북도 의성군을 이 프로젝트의 주 무대로 삼았어요. 써니들이 일정 기간 의성에서 살아보면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설계했는데요. 방학 기간을 이용할 수 있게 거주 기간은 2개월, 이후 교육을 진행하며 문제정의를 다듬는 시간은 3개월로 설정했어요.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대학생들이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낯선 지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였어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찾아오더라도,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낯선 대학생들의 방문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무언가 해보겠다고 와서 지역을 들쑤셔 놓고 결국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표현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또, 타 기관이나 단체에서 지역문제를 창업과 이주라는 해법으로 풀어가는 방식과는 달리, Sunny에서는 지역을 청년들의 배움과 경험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대학생을 지역에 보내 살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현장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실험의 환경을 설계하는 데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죠.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삶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도록, 크게 세 가지 시도를 해보았어요.
① 처음 2주, 가까이에서 지역을 만나기
지역에 대한 해상도를 최대한 빠르게 높이기 위해, 초기 2주의 현장 방문 일정을 촘촘하게 설계했어요. 참여자들은 복지관 셔틀버스를 함께 타고 어르신들의 일상을 이동하거나, 사과 농장과 공판장을 관찰하고, 면 단위 의료 봉사를 따라가며 주민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핵심 인물이라면,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며 두터운 관계망을 쌓아온 분들이 진짜 핵심이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그래서 전통시장 상인회장이나 복지관 팀장님처럼 지역 사정에 밝은 분들을 ‘지역 멘토’로 모셨어요. 이분들 덕분에 현지 네트워크와 연결되고, 현장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나가면서 지역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② 지역 어르신과 정서적 신뢰 만들기
지역에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고 말하면, 자칫 시혜적인 태도가 생기거나 현장의 진짜 맥락을 놓치기 쉬워요. 그래서 우리는 한 팀당 노인회관을 한 곳씩 정해두고, 청소를 하고 윷놀이를 하며 먼저 ‘이웃’으로 다가가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쌓은 관계 덕분에 정을 나누고, 신뢰를 받을 수 있었어요. 부녀회장님은 교육 공간에 켜진 불을 보고 인사를 건네러 들르셨고, 수료식 날에는 한 농부님이 고맙다며 사과 한 박스를 무겁게 들고 찾아오시기도 했어요. 이분들은 단순한 지역 주민을 넘어, 참여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주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주신 현장의 ‘키맨’이었습니다.
③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수정하기
현장에서 겪는 경험이 단순한 ‘느낌’으로만 남지 않도록, 두 달 동안 매일 체크인·체크아웃 루틴을 운영했어요. 매일 아침 써니들은 교육 공간으로 체크인한 뒤, 현장으로 나섰어요. 하루 종일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운 뒤에는 다시 교육 공간으로 돌아와 체크아웃하고, 숙소로 가서 하루를 마무리했죠. 이는 써니들이 숙소나 교육 공간 등 익숙한 장소에만 머무르면서, 현장에 나가기 주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장치였어요.
아침에 세운 가설이 저녁 현장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이 매일 반복되었어요. 하지만 이것을 실패라고 부르는 대신,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라고 생각했어요. 써니들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녁에 돌아와서는 바로 다음 날의 계획을 수정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책상 위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현장의 가변성을 온몸으로 배우게 되었죠.
이렇게 Sunny 사무국에서는 청년들이 최대한 빠르게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지만, 실제 현장에 뛰어든 써니들은 그들만의 또 다른 시행착오를 만나게 됐어요. 현장에서는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언어로 재정의했을까요? 참여한 세 팀 중 하나인 ‘의구심 팀’의 이야기를 통해 그 과정을 살펴볼게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진짜 문제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 문제들
의성에 도착한 의구심 팀이 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언어였어요. 어르신들의 투박하고 진한 사투리는 마치 고난도 영어 듣기 평가처럼 느껴질 정도로 해석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사투리보다 어려웠던 건 어르신들의 진짜 속마음을 듣는 과정이었어요. 인터뷰 시간 60분이 주어진다면 50분은 고향 이야기, 젊은 시절 고생담 같은 스몰 토크로 채워지기 일쑤였거든요. 또, 어르신들은 “아무 문제 없다”고 하시다가도 “이것도 저것도 다 문제”라고 하셔서, 무엇을 사회문제로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며 한 달을 보냈어요.
어르신들과의 대화에서 정말로 문제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의구심 팀은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늘려가기로 했어요. 어르신들의 시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기로 했죠. 뜨거운 한여름, 새벽 5시에 일어나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시는 약국, 시장, 버스 정류장, 마을 정자 등을 오가며 긴 관찰과 짧은 인터뷰의 시간을 쌓아 나갔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장을 관찰하던 어느 장날, 버스 정류장에서 한 어르신을 만났어요. 할머니 한 분이 고추 20근이 담긴 보따리를 들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혼자 버스에 오르려는 모습을 보고, 의구심 팀은 짐을 대신 들어드리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 댁으로 함께 향하던 중, 정류장 앞에 세워둔 할머니의 실버카가 의구심 팀의 눈에 들어왔어요. 왜 실버카를 정류장에 두고 가셨냐고 물으니, “가지고 가고 싶어도, 버스에 못 실어서 두고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버스에 실버카를 실을 공간도 없고, 부피가 크고 무거워 혼자서 싣고 내릴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마을회관, 이웃집 등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가기 위해 읍내로 가려면 실버카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요.

의구심 팀은 ‘이동의 공백’이 생기는 바로 이 지점을 문제로 포착하게 되었어요.
이동의 공백을 발견하다
시장 골목, 마을회관, 미용실, 버스 정류장… 의성 어디서든 실버카를 끄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의구심 팀은 5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르신 154명을 만나 인터뷰했어요. 의구심 팀이 만난 어르신들 중 절반이 넘는 51명이 실버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허리·무릎·관절 질환을 겪고 있었어요. 실버카가 있으면 두 손으로 밀면서 중심을 잡기도 하고, 걷다가 잠시 앉아 쉬기도 하고, 짐을 싣고 나를 수도 있었죠.
의구심 팀은 보행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면에서 읍내로 이동할 때 버스에 실버카를 싣기 어려워서 생기는 불편함을 ‘실버카 공백 구간’이라 정의하고, 장날 읍내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형 실버카 서비스 ‘구르미’를 제안하게 되었어요. 읍내 정류장 옆에 마련된 구르미 대여소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기만 하면 실버카를 빌릴 수 있는 일종의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인데요. 앱 설치나 QR코드 인증 없이, 누구나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어요.

실제로 의성 장날에 맞춰 구르미를 시범 운영해 보면서, 어르신들이 실제로 사용하시는 모습을 관찰해 봤어요. ‘정말로 어르신들은 지금 그대로 괜찮을까?’, ‘지팡이로만 다녀도 충분한 걸까?’ 솔루션을 준비하면서 내내 품었던 고민이 무색하게, 시범 운영을 시작한지 43분만에 준비한 모든 실버카가 대여되었어요. 실버카를 사용해 보신 어르신 14명 모두가 다음에도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장을 볼 수 있었다고 답한 분도 10명이나 되었어요.
“실버카 가지고 장 보니까 훨씬 빨리 장을 봤어. 원래 같았으면 이 차(이른 시간대의 버스)를 못 타지.”
“국거리만 사서 가는 건데 덕분에 양말도 사고, 생선도 사고…”
– 어르신 인터뷰 중
공유 실버카를 경험한 어르신들은, 직접 써보고 나서야 비로소 본인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는 걸 체감하셨어요. 말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솔루션으로 만들어 그 효과성을 검증한 의구심 팀은 이제 공유 실버카 모델이 실제 서비스로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 구르미 팀 인터뷰 보기]
실험해보니 알게 된 것들
써니들의 변화를 함께 경험하면서, Sunny Scholar in 의성을 기획한 프로젝트 매니저에게도 다양한 분야의 인사이트가 생겼습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첫째, 예상치 못한 변수를 즐기며 문제를 해결하게 된 대학생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참여자들의 성장이었어요. 아침에 들고 나간 가설이 그날 저녁 현장에서 바로 깨지는 경험,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 계획을 현장에서 바로 수정해야 하는 경험 등을 통해 현장 대응력을 온몸으로 익혔습니다.
둘째, 데스크로는 찾을 수 없는 현장에 살아야만 보이는 ‘진짜 데이터’
이번 실험을 통해 진짜 데이터는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신했습니다. 특히 지역의 수많은 문제는 정리된 자료나 보고서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를 고민하고 정의할 이해관계자나 자원조차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결국 참여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이야말로, 지역의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는 가장 본질적인 시작임을 확인했어요.
셋째, 실험 공간으로서의 기회와 한계
지역은 소규모이고 이해관계자도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던진 작은 시도에도 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지만, 정작 찾아낸 해결책을 실제 지역 사회 시스템 안에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어요.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할 주체가 적다는 로컬의 특성이 기회이자 과제가 된 셈이죠.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가 우리의 다음 여정을 위한 시작점이 되었어요.
이제 Sunny Scholar in 의성은 Sunny On-Site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다시 한번 의성군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해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현장의 경험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를 사회적 목소리로 확산하는 경험이 가능하도록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있어요. 7월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