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가 있어도 풀지 못한다면

2025년 8월 23일, 올해 수능을 85일 남겨 둔 어느 토요일. 고등학생 세 명이 행복나눔재단 회의실을 찾았어요. 상기된 얼굴로 자리한 이들 앞에 놓인 건 바로 7월 10일에 진행된 고3 모의고사 시험지. 얇은 종이에 활자가 가득 인쇄된 시험지 대신 두꺼운 점자 책과 점자판, 노트북이 책상에 놓였습니다.

이들은 중증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들로, 행복나눔재단에서 마련한 7월 모의고사를 치르기 위해 모였는데요. 그렇다면 점자와 음성으로 학습하는 중증 시각장애 학생은 어떻게 모의고사를 볼까요? 또, 이들을 위한 시험지는 어떻게 만들까요? 학생들은 원하는 만큼 자주 시험을 쳐볼 수 있을까요?

중증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모의고사, 어떻게 준비했는지 이번 노트에서 소개할게요.

이날 모의고사는 곧장기부 Impact의 #2507-117. [임팩트] 고3 7월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 시각장애 고등학생 9명에게를 통해 시험지 제작비를 모금했어요. 모금함과 함께, 시험지 제작부터 시험 후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할게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모금함 페이지로 이동해요.

청각과 촉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12시간

중증 시각장애 학생은 3가지 도구를 사용해 수능과 모의고사를 치릅니다. 점자 시험지로 문제를 읽거나,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문제를 음성 파일로 들을 수 있어요(음성 파일은 국어·영어·탐구 영역에만 제공됩니다). 답안지는 점자판을 이용해 직접 점자를 찍어서 작성하고, 계산이 필요한 수학 영역에서는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를 사용할 수 있죠.

중증 시각장애 학생은 비시각장애 학생보다 1.7배 더 많은 시험 시간을 가집니다. 기본적으로 점자로 읽는 속도가 눈으로 읽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고, 읽어야 하는 양도 많기 때문이에요. 또, 시각을 사용할 때는 여러 글자와 단어를 동시에 스캔하듯 읽거나 순서에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읽고 풀 수 있지만, 음성을 듣거나 점자로 인지할 때는 종이 넘기듯 문항과 문항을 쉽게 오갈 수 없어요. 원하는 순서대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노하우가 필요하죠. 답안을 작성할 때도 비시각장애 학생은 미리 답안 번호가 찍힌 OMR 카드에 점을 마킹하면 되지만, 시각장애 학생은 종이를 끼운 점자판에 직접 문제와 답안 번호를 점자로 찍어야 합니다.

준비물도 많고 시험 시간이 긴데도 중증 시각장애 학생이 모의고사를 치르는 횟수는 비시각장애 학생보다 적습니다. 보통 고등학생이 되면 1·2학년 때는 연간 4회(3·6·9·10월), 3학년 때는 수능 전까지 6회(3·5·6·7·9·10월)의 모의고사에 응시해요. 하지만 중증 시각장애 학생은 1·2학년은 연간 2회, 3학년은 연간 4회 정도 시험을 치를 수 있어요.

수능에서 원하는 만큼 실력을 발휘하려면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를 먼저 풀지, 어느 타이밍에 답안지를 작성할지는 모의고사를 통해 연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각장애 학생은 이러한 연습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비시각장애 학생은 언제든 시험지와 답안지를 온라인으로 내려받아 풀어볼 수 있겠지만, 시각장애 학생은 점자·음성 시험지가 없으면 실전처럼 연습하기 어려워요. 시험지 PDF 파일을 자동 점역하거나 스크린 리더로 들으면서 연습하기도 하지만, 문단 편집이 고르지 않거나 글자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등 불편함을 겪곤 해요.

그래서 행복나눔재단에서는 2023년부터 점자·음성 시험지를 직접 제작하여 모의고사를 열고 있어요. 수능에서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시각장애 학생들도 모의고사를 충분히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시험장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문제 푸는 방법을 관찰하면, 누군가는 점자 시험지만 쓰고 누군가는 음성을 따라 문제를 푸는 등 저마다 방식이 모두 달라요. 그러니 자신에게 어떤 방법이 가장 잘 맞는지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요.

그렇다면 학교나 학원도 아닌 사무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149명의 손을 거쳐 만드는 모의고사

공식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가 온라인에 배포되면, 행복나눔재단에서도 모의고사 제작에 박차를 가합니다. 시험지 제작을 담당할 업체와 미리 견적을 내고, 전담 팀을 꾸리는 등 준비를 시작해요.

동시에 시험을 치르고 싶은 학생을 모집합니다. 행복나눔재단과 정기적으로 만나온 시각장애 참여그룹 학생들이나 에듀모아 알림을 받는 학생들에게 알리고, 맹학교를 통해서도 최대한 많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해요.

이번 모의고사에는 총 아홉 명이 시험을 치렀어요. 학생들은 행복나눔재단에서 마련한 시험장에 와서 직접 시험을 볼 수도 있고, 시험지만 택배로 받아볼 수도 있습니다. 응시 인원이 확정되면 선택 과목을 조사하고, 얼마나 시험지를 제작해야 할지 결정한 뒤 본격적인 제작 단계로 넘어갑니다.


① 준비물을 마련하자! 시험지 제작하기

곧장기부 Impact 모금함의 맨 아래, 장바구니가 곧장부터 확인해 볼까요? 여기에 모의고사 시험지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21개 품목을 모두 담아 두었습니다.

장바구니 품목은 시험 문제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파일을 담은 음성 시험지, 문제를 점역하여 책 제본한 점자 시험지 그리고 도형이나 지도 등 시각 자료를 점자로 읽을 수 있도록 변환한 텍타일 시각자료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요.

음성 시험지는 USB에 담아 1명당 1개씩 제공되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시험 문제를 교정·교열하여 음성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점자 시험지는 점역 교정을 거쳐 점자로 인쇄한 뒤(천공 인쇄), 과목별로 제본하여 배부합니다. 점자로 인쇄했을 때는 인쇄물 양이 더 많아지다 보니 책 형태로 제본하고 있어요. 텍스트는 어느 정도 자동 점역이 가능하지만 텍타일 시각자료는 점역사가 직접 점을 하나하나 찍어야 해서 제작 단가도 높습니다.

시험지 제작은 한국점자도서관에 의뢰합니다. 한국점자도서관에서는 점역사 3명, 교정사 3명 그리고 협업 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 1명이 시험지 제작에 참여하고 있어요.


② 함께 만드는 시험, 곧장기부로 모금하기

시험지를 제작하는 데 중요한 건 제작비! 7월 18일부터 곧장기부 Impact를 통해 제작비 모금을 시작했어요.

행복나눔재단에서는 모의고사를 몇 차례 운영해 보면서, 이러한 경험이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정기적으로 모의고사를 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곧장기부 Impact로 제작비를 모금하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도 모의고사를 위해 모금함을 열고, 오픈 알림을 신청한 분들과 뉴스레터 구독자분들께 모금 시작을 알렸습니다.

시험지 제작에는 총 3,921,500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해, 가견적의 70%인 2,745,000원을 1차로 모금했어요. 제작 완료 후 최종 제작비는 3,768,500원으로, 2차 모금을 통해 남은 금액 1,008,500원을 모금했습니다. 1차 모금에는 118명이, 이후 정산을 위한 2차 모금에는 20명이 참여해 주셨는데요. 1·2차 모두 함께해 주신 분들도 계셔서, 총 135명의 기부자분과 함께 7월 모의고사를 준비할 수 있었답니다.

모금을 통해 시험지를 무사히 제작하고 나면, 완성된 시험지는 먼저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전달됩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시험지만 받아보기로 한 학생들을 위해 신청한 응시 과목에 맞게 시험지를 분류해서 우편으로 발송해요. 이후 고사장을 직접 세팅하고(주로 행복나눔재단 회의실이지만, 외부 공간을 대여하기도 합니다), 시험 당일 학생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등을 미리 확인하는 것도 프로젝트 매니저의 몫입니다.


③ 모의고사 D-DAY, 시험 진행하기

드디어 모의고사 당일! 아침 8시 40분, 국어 영역으로 시작해 오후 8시 10분, 탐구 영역으로 끝나는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사실에는 학생들과 프로젝트 매니저 외에도 정·부감독과 복도 감독 등 감독관 3명이 함께 들어갑니다. 이들은 곧장기부 Impact에 참여한 기부자분들 중에서 모집한 봉사자분들입니다. 감독관분들은 학생들이 이동할 때 필요한 안내 보행을 지원하고, 특히 시각장애 학생들이 어떻게 시험을 치는지 관찰하는 역할을 해주셨어요. 무엇이 불편해 보이고, 어떤 것을 개선하면 좋을지 면밀히 기록해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전달해 주었답니다.

시험을 모두 마친 뒤에는 시험장 환경이나 운영 방식 등에서 좋았던 점과 어려웠던 점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다음 시험을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를 함께 정리했어요. 이렇게 수집한 의견은 이후 시험을 위한 매뉴얼에 반영할 수 있었어요.


④ 채점과 성적표도 진짜 시험에 가깝게

모의고사가 끝나면 시각장애인복지관의 시각장애인 선생님 1명과 함께 답안지를 채점해요. 점자에 능숙한 선생님이 학생들의 점자 답안지를 읽어주면 프로젝트 매니저가 한글 파일에 받아 적은 후 점수를 매겨요. 이때 학생들이 답안을 작성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반복하는 실수 패턴이 있다면, 선생님이 알려주신 수정 요령까지 포함해 성적표를 작성합니다.

성적표에는 영역별로 작성한 문항과 원점수, 그리고 예상 표준편차 점수까지 함께 적어요. 사실 행복나눔재단 모의고사는 원래의 시험이 끝난 뒤에 치러지므로 표준편차나 백분율 같은 상대평가 지표를 정확히 알기 어려워요. 하지만 시각장애 학생들도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프로젝트 매니저가 예상 표준편차 점수를 계산*해서 함께 전달하고 있어요. 성적표는 한소네를 사용해 쉽게 점자로 읽을 수 있도록 도표나 그래픽 요소 없이 텍스트로만 작성해 한글 파일로 전달합니다.

*표준편차 점수를 계산할 때는 EBS i 모의고사 채점/분석 서비스나 사설 인강 사이트의 유사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성적표는 일반 학교의 성적표를 참고해, 프로젝트 매니저가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는 항목으로 구성했어요.

점자 파일과 종이 시험지는 시험이 끝난 뒤에도 누구든 시험지를 풀어볼 수 있도록 아카이빙하고 있어요. 점자 파일은 에듀모아에 업로드하고, 종이 시험지는 점자 도서관과 시각장애인복지관에 기부해요. 그래서 학생들이 응시하지 않는 선택 과목이라도 모두 제작해 둔답니다.

시험을 경험한 학생들은 ‘준비된 환경에서 응시할 수 있어 유익했다’, ‘실전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는 후기를 남겨 주었는데요.

이렇게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도 실전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까지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맹학교 교사분들께 일일이 자문을 구하며 어떤 환경이 학생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할지 고민해야 했죠. 심지어 점자판에 끼워 답안지로 쓸 종이 두께까지도 결정해야 했는데요(시험 환경을 실제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맹학교에서 통용되는 120g 점자용지를 선택했답니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게 된 건 모두 이러한 노력 덕분이에요.


작은 솔루션 하나에 날개를 달기까지

성적표 전달과 시험지 아카이빙까지 모두 끝나면 비로소 우리의 모의고사도 끝! 모의고사를 기획하고, 시험지를 제작하고, 시험을 진행하는 데까지 참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어요. 프로젝트 매니저 1명의 기획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한국점자도서관 7명, 자원봉사자 3명, 채점 담당 선생님 1명, 그리고 곧장기부 기부자 135명을 만나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노트를 쓰고 있는 곧장기부 Impact의 담당 매니저 2명까지 포함해, 총 149명의 손길을 모아 이번 모의고사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곧장기부 Impact 매니저의 역할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모의고사 경험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지 기부자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거예요. 임팩트기부 모금함마다 솔루션 개발 과정이 잘 드러나게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문장을 쉽게 고쳐 쓰고, 비용이 어떻게 쓰이는지 지출 항목을 보기 좋게 다듬어 기부함을 세상에 내놓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금함 한 페이지를 다 읽으려면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야 할 만큼 이야기가 길어질 때도 있어요.

그래도 우리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민과 노력을 거치는지 잘 전달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모금함의 탄생부터 결과까지 많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담게 됩니다. 오늘 소개한 모의고사 프로젝트도 사실은 행복나눔재단에서 여러 시각장애 관련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다양한 인사이트를 누적해왔기 때문에 개발할 수 있었던 솔루션이거든요.

다행히 모금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도 모금함을 통해 프로젝트를 잘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 기뻐요. 특히 모의고사 프로젝트에서는 기부자분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홍보했더니, 단시간에 필요 인원보다 더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셔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곧장기부 Impact를 통해 솔루션이 기부자들과 만나 생명력을 얻고, 꾸준히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모의고사 프로젝트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어요.

· “비시각장애 학생들에 비해 모의고사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꾸준히 있었으면, 횟수가 늘어났으면 한다.”
· “동등한 학습권 보장을 위해 환경 개선 및 장비 지원이 있어야겠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나 역시도 소중한 시간을 보냈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자원봉사자 후기 중

모의고사 프로젝트와 곧장기부 Impact의 만남을 소개한 이번 노트, 어떠셨나요?

행복나눔재단의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는 여러 노트를 통해 설명드렸지만, 개발된 프로젝트가 모금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드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가끔 ‘모금함을 다 읽으실까?’라는 궁금증이 들 때가 있는데요, 이 글을 통해 모금함의 숨은 이야기까지 더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요.

이 노트를 마무리하는 지금, 정말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모의고사에 참여한 모든 학생에게 좋은 결실이 있는 계절이길 바라요. 곧장기부 Impact도 더 많은 기부자분이 새로운 기부를 경험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 중이랍니다.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다음 아티클에서 또 만나요!

Project Manager 박은실 유승제 Edit 제소윤 Graphic 박익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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